한범덕 미래과학연구원 고문

100년 만이라는 가뭄으로 숨 막히는 가운데 생각지도 않은 메르스란 생소한 이름의 질병으로 지금 우리나라는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총과 칼을 들지 않아서 그렇지 어떤 면에서는 더 무서운 전쟁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지난 6월16일 대전 을지대병원에서 있었던 어느 가족의 임종편지를 보니 가슴이 절절 끓어올랐습니다.

6월4일 입원한 60대 부인의 남편이 중환자실 간호사에게 전화를 했답니다.

자기와 환자의 아들과 딸이 쓴 편지를 읽어달라는 부탁이었다고 합니다. 전날 아무래도 어렵다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듣고 임종을 할 수 없게 되자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그 병원은 환자 20여 명과 의료진 50여 명이 ‘코호트 격리(의료진과 환자를 함께 병동에 격리)’에 들어가 있고, 환자의 가족인 그 남편과 아들, 딸 셋도 자가 격리상태였다고 합니다.

첫 번째로 38년 동고동락한 남편의 편지를 읽던 김용숙 간호사가 가슴이 북받쳐 다 못 읽자 이승희 간호사가 마저 읽었답니다.

아들과 딸의 편지 역시 세 명의 간호사가 나누어 읽은 모양입니다.

아마 다섯 명의 간호사 모두 눈물바다를 이루었던 듯싶어요.

그리고 다섯 시간이 지난 오후 3시 17분 환자는 운명했답니다.

사랑하는 아내,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하고, 장례도 직접 치를 수도 없는 이 가족의 운명이 어떻게 보면 전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현재 확진환자와 또 검사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격리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 또한 전쟁과 다를 게 있겠습니까? 다행히 지난주부터 장마가 시작되어 메르스의 기세가 한풀 꺾여버린 듯하여 다행입니다.

인류의 문명이 아무리 번창하고, 나라가 번성하여도 전염병의 역사를 보니 아주 허약하게 무너진 쪽은 인간이었습니다. 아직도 진행중임을 이번 메르스로 알게 된 듯합니다.

자료를 보니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에서 있었던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무력이 월등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무너진 것도 무력이 아닌 ‘장티푸스’로 생각되는 질병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시 아테네 인구의 ¼이 이 질병에 걸렸다는 겁니다.

세계사상 최강대국이었던 로마의 멸망도 천연두로 믿어지는 질병 때문이라고 합니다.

AD165년경의 역병으로 5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AD250년경에는 하루 5,000명 이상이 죽었으며 AD540년경에는 선페스트로 추정되는 병으로 하루 10,000명 이상이 죽게 되어 결국 로마도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중세를 마감한 것이 쥐벼룩에 의한 페스트라는 것은 어느 정도 학자들의 통설이라고 합니다.

시작은 어처구니없게도 성을 공격하는 방책에서 번졌다고 합니다. 1347년 몽골의 킵차크 칸국이 크림반도에서 제노바교역소를 공격하는데 페스트환자의 참혹한 시체를 성안으로 보내 공포를 유발시키려 날려 보냄으로서 페스트가 창궐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공격을 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이것이 유럽인구의 ⅓을 죽게 만든 대재앙을 불러오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된 아메리카신대륙의 원주민들도 소수의 총칼든 무장군인에 의해서 보다는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와 같은 유럽전염병으로 멸망했다고 합니다.

1919년 끝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죽은 사람보다 당시 유행한 인플루엔자에 의해 사망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은 다 아실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에게 온 메르스, 소위 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은 2012년 9월 24일 사우디에서 발견된 신종전염병이라고 합니다.

발생원인은 바이러스 균에 의해서고, 잠복기는 2주정도이며 감염루트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우디에서 치사율이 40%라고 해서 우리를 크게 긴장시키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높진 않은가 봅니다.

그러나 현재 확진 환자 대 사망률을 보면 10%이상이라 긴장을 늦출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뚜렷한 치료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항바이러스제 등 기존의 다른 유사병의 치료제중 가장 효과적인 조합법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초기에 치료하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손 씻기, 청결유지, 기침·재채기 시 휴지 등을 사용하여 코와 입을 가리는 노력 등 예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메르스는 출입국관리에서부터 병원에 이르기까지 감염접촉이 우려되는 루트차단이 완벽하질 못하고, 경로 추적조차 시기를 놓쳐 사태를 크게 키우게 된 것 같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모두가 힘을 합쳐 이번 전쟁을 가라앉히고, 이번 사태를 정밀 분석하여 면밀한 대책을 수립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몰라서 저지른 실수는 빨리 수습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알고도 실수를 반복한다면 그것은 용서가 안 됩니다.

이번 메르스로 우리나라가 질병에 안전한 나라로 올라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최고의 날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