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딸네 집에 아내와 들렀습니다.

새로 이사한 집은 참 예쁘게도 꾸며놓았더군요. 우리 내외는 딸 부부의 알콩달콩한 모습에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마침 임신 6개월인 딸의 제법 커진 배가 눈에 보였습니다.

참 신기한 세상입니다.  딸애가 스마트 폰을 가져와 뱃속에 있는 아이의 초음파사진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주더군요.

처음에는 흑백으로 보이는 사진이 무엇인지 잘 몰랐는데 손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말을 해주니까 비로소 그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아빠, 이게 눈이고, 귀래요. 그리고 이것은 위래요. 여기 콩닥콩닥 뛰는 것은 심장이래요.”

“아니 눈이 이리 크니? 그리고 위가 이렇대. 아, 심장은 정말 열심히 뛰는구나.”

“아빠, 그런데 신기한 게 있어요. 여기 이 길쭉한 모양은 발이라고 하는데 엄지발가락 좀 보세요.

치켜세우고 있잖아요. 류서방도 앉아있으면 엄지발가락을 치켜세우는 버릇이 있어요. 그런 것이 어떻게 닮지요?”

그랬더니 우리 사위가 자기 발을 들며 말하였지요.

“보세요. 제가 저도 모르게 가끔 이렇게 엄지발가락을 치키는데 어쩜 얘가 이렇지요?”

그것 참, 웃음이 나오면서도 조물주의 힘이 이런가 하고 놀랐습니다.

제가 2002년 충북도에서 개최한 ‘세계국제바이오엑스포’를 준비하면서 게놈프로젝트를 공부하고 유전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실제 손주의 초음파를 보면서 접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당시에는 후손에게 물려주는 유전은 그 생긴 모습에 국한하고, 기능과 행태에 대해서는 몰랐었습니다. 학자들도 파란 눈, 검은 눈이나 노란 피부, 하얀 피부와 같은 형태에 대해서 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소위 세포 속에 들어있는 핵, 그리고 그 안에 염색체, 다시 또 그 안에 있는 DNA에 의하여 유전이 이루어진다고 보고 그에 대한 연구가 바이오혁명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과연 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자란 소위 유복자가 커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의 버릇, 가령 겸연쩍을 때 뒤통수를 긁는다든지, 고개를 갸우뚱한다든지 하는 특유의 행태를 보이는 것은 어떤 작용이 있는 것일까요?

마침 과학동아 8월호 특집이 ‘쌍둥이는 왜 다를까’라는 주제로 나왔습니다.

여기에 대한 답이 ‘후성유전학’이라고 합니다. 조금 어렵지요. 저도 처음 듣는 말이라서 열심히 읽었습니다만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름대로 쉽게 정리해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몸 생김새는 거의 똑같지만 자라면서 성격이나 취향이 서로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쌍둥이의 DNA는 같은데 성격이나 취향이 왜 이렇게 달라졌느냐하면 환경과 경험의 차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경험이 DNA의 ‘사용법’을 바꿔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그 사용법을 ‘후성유전학’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 사용법은 세대를 넘어 자식에게 유전되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바로 우리의 경험과 마음가짐이 모두 DNA에 기록된다는 겁니다.

조금 더 과학적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프랜시스 크릭은 1956년 ‘센트럴 도그마’이론을 제안하여 현대생물학의 기본개념을 정립했다고 합니다. 그 이론은 유전정보를 가진 DNA가 유전정보의 전달자 역할을 하는 RNA를 만들고, RNA는 세포내에서 실제로 기능을 수행하는 단백질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념아래 과학자들은 모든 생명현상연구에 뛰어들어 1970년대에는 DNA 복제과정이 밝혀졌고, 1980년대에는 RNA를 만드는 전사를 연구하게 되었는데 이 전사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기능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DNA가 아닌 DNA의 구조가 전사를 조절한다’는 것과 ‘DNA가 똑같은 세포가 왜 서로 다른 세포로 분화되는가’ 하는 과학자들의 고민은 결국 DNA가 정보를 저장하는 유일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후성유전학’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후 후성유전학은 눈부시게 발전하였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후성유전학은 어쩌면 우리가 왜 올바르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대답일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했던 모든 경험이 우리 자식에서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내 몸은 나의 것인 동시에 나의 후손의 것이라는 겁니다.

오늘도 최고의 날이 되십시오.